<대학교수가 된 노숙자>의 저자, 김덕희 교수님의 사연이 월간 <신앙계>에 소개 되었습니다.
기사의 일부와, 지난 이벤트 <저자와의 대화> 사진을 소개합니다.
세잎 클로버의 행복을 찾다
“얼마 전 딸아이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 반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던 거죠. 마침 새벽예배 시간과 가까워 여느 때처럼 딸과 함께 새벽예배에 나섰습니다.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감사밖에는 드릴 것이 없네요.”
노숙자에서 대학교수가 된 김덕희 교수의 말이다.시골 부잣집의 귀한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정성스런 불공 아래 태어난 그는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는 풍족한 시간들을 보냈다. 오죽하면 귀한 아들이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보냈을까.평탄하게 성인이 된 후 예수를 믿고 전도사가 됐다는 사촌동생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그런 사촌동생을 엄청 욕하며 핍박했다. 대학원을 포기하고 선교헌신을 한 사촌동생이 교회에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후로도 그는 너무나 잘 나갔다. 예쁜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20대에 학원강사를 하다가 사업까지 시작했다. 완구회사를 차렸는데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왔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 동창회를 갔는데 친구들이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경제학과이다 보니 은행이나 금융권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주식 붐이 있던 때라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조차도 모두들 주식을 하던 때였죠. 그래서 500만원으로 첫 투자를 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 700만원이 되더라고요. 마침 연말이라 회사매출도 신장해 1천만원을 더 투자해 총 1천5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죠. 그런데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5천만원이 되더군요. 당시 그 돈이면 집을 한 채 살 수도 있는 금액이었어요. 그때부터 주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1층은 회사고 3층에 살림집이 있었는데 주식시장에 빠져 회사오픈 시간에도 내려오지 않고 온통 주식에만 신경이 가 있었다. 어떤 때는 전화비만 30여만 원이 넘게 나올 정도였다. 모두 주식거래의 결과였다. 그러다 첫 번째 사고가 터졌다. 1억을 날려버린 것. 둘째 아들 돌잔치를 앞둔 때였다.
“아내에게 돌잔치를 할 수 없다고 했죠. 난리가 났습니다. 아내는 제 속도 모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미 예약대로 돌잔치를 진행시켰습니다.”몸무게가 순식간에 10kg이나 빠졌다. 주변 사람들이 질병이 온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 돌잔치에서 찍었던 사진들만 봐도 당시 엄청나게 마음고생을 한 티가 날 정도로 말랐었다. 그러나 아내조차도 주식 때문에 사고가 터진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1억을 잃었어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 이미 주식이란 도박에 빠져 온몸과 영혼까지 사탄에게 저당 잡힌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통장에 있던 28억원을 모두 주식으로 날렸습니다.”돈이 없으면 멈췄어야 했는데 그는 끊임없이 주식에 온 마음을 던져 넣었다. 사채까지 끌어 썼고, 암에 걸리신 어머니의 병상 앞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주식을 했다. 나중엔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았던 돼지저금통의 배까지 갈랐다. 날로 그의 중독증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만 갔다. 시골의 아버지는 논밭을 팔아 사채 빚을 갚아주었고 아내의 친정에서도 돈을 끌어다 썼다. 빚을 갚으라고 준 돈을 빚을 갚는데 쓰지 않고 다시 주식에 재투자하기를 반복, 결국 집까지 다 팔아서 주식을 했다.
“완벽하게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때였습니다. 아내가 주식을 못하게 하면 자살시도까지 했었으니까요. 한 번은 딸아이가 욕조에 있는 저를 구한 적도 있었습니다.”
팔목을 긋고, 10층, 15층에서 투신… 무려 일곱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미수에 그쳤다. 이런 그를 보다 못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매까지 맞았지만 주식중독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주식을 못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이었으니까요. 결국 노숙자 신세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노숙자가 되고서 그는 그들 사이에도 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왕초가 돼야 제일 따듯한 안쪽 자리에 박스집을 만들어 잘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최고가 돼야 한다는 평소 그의 성향대로 결국 왕초의 자리에 앉아 가장 안쪽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1년 동안을 수원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사촌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를 잡고 어찌나 펑펑 울던지…. 노숙생활의 가장 큰 고통이던 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촌동생의 교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사촌동생이 라파공동체(윤성모 목사)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중략>
자세한 내용은 12월호 <신앙계>를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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